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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이름이 바뀌었슈..

최태호칼럼 | 기사입력 2019/08/14 [05:52]

마을 이름이 바뀌었슈..

최태호칼럼 | 입력 : 2019/08/14 [05:52]

 

▲ 중부대학교 한국어학과 최태호 교수           국민투데이 전문가 칼럼  

한국어학과 교수가 사투리를 쓰면 이상하겠지? 경기도에서 태어나 충청도에서 오래 살다 보니 충청도 방언에 익숙해졌다. 충청도에 오래 산 경험으로 충청도 방언과 한자어에 얽힌 이야기를 해 보련다. 충청도에서 제일 유명한 산은 계룡산이다. 계룡산에 가면 동학사에서 고개를 넘어가면 계룡대가 있고, 그 너머에 두마면이 있다. 신도시가 이루어진 곳을 신도안이라고 하고 바깥쪽에 있는 작은 고을 이름이 두마면이다. 신도안은 한자로 新都案이라고 쓰기도 하고 신도내(新都內)라고 쓰기도 한다.

 

이 고을 이름 때문에 필자는 한 동안 고민에 빠진 적이 있다. 박사학위 논문을 심사하는데 이 명칭이 나온 것이다. 어느 것이 맞는지 한참을 고민하고 연구할 수밖에 없었다. 논문심사를 하기 위해서는 그 의미를 정확하게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여러 문헌을 뒤지다가 두마면에 관한 설명을 읽고 무릎을 쳤다. 두마면은 한자로 豆磨面이라고 쓴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가 헤맸지만 그 뜻을 풀고 보니 답이 나왔다. 두(豆)는 ‘콩’이지만 ‘팥 두’자로도 쓴다. 마(磨)는 ‘갈 마’자로 한글을 한자어로 바꾸면서 비슷한 음을 따서 지은 명칭이다. 그러면 ‘두마면’은 무슨 뜻일까? 앞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팥가리 <= 팎거리<= 밖거리’에서 유래한 것이다. 필자도 어려서 웃말(웃거리), 아랫말(아랫거리) 등으로 부른 것을 기억한다. 즉 두마면(豆磨面)은 ‘밖거리’를 음차해서 쓴 것이다. 그렇다면 ‘신도안’의 뜻은 분명하게 밝혀졌다. 즉 ‘新都안’을 말하는 것으로 新都內를 말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이라는 책을 보면 “진산군 월외리에서 인삼이 나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필자는 ‘월외리’만 찾으면 되겠구나 하고 진산면에 있는 마을을 전부 다 찾아보았다. 아무리 찾아도 월외리는 보이지 않았다. 인삼의 종주지를 밝히는 중요한 자료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월외리라는 마을이 없었기 때문이다. 할 수 없이 전국에 있는 월외리를 다 찾아보았다. 학문의 길은 멀고도 험했다. 전국에는 월외리가 11군데 있었다. 가깝게는 옥천군에 월외리가 있었다. 이 월외리라는 마을의 특징을 가려 보니 모두 ‘달박골’이라는 우리말 이름이 있었다. 그렇다. “‘달이 밝은 동네’를 일컫는 것이구나.” 하고 진산면에 있는 ‘달박골’을 찾았더니 지금의 월명동(月明洞 = 석막리)이었다. 즉 ‘달(月) + 밝(밖, 外) + 골(里)’이 원래의 이름인데, 이것을 한자로 차자한 것이 월외리로 되었고, 이것을 다시 현대식으로 표기하다 보니 월명동이 된 것이다. 그곳이 백제삼의 종주지라고 문헌에 나타나 있다.(<삼국사기>에도 백제의 무령왕이 양나라 무왕에게 진상한 흔적이 남아 있다.)

 

필자가 처음 교사로 발령난 곳은 중랑구 묵동에 있는 ‘태능중학교’였다. ‘묵동’도 원래의 이름은 ‘먹골’이었다. 그것을 한자화하면서 ‘먹(먹 墨) + 골(골 洞) = 墨洞’으로 변한 곳이다. 먹골배가 유명하다는 것은 당시 사회책에도 나올 정도였다. 지금은 먹골은 사라지고 묵동만 남아 있다. ‘태능중학교’도 원래는 ‘태릉중학교’라고 해야 맞다. 하지만 오래 된 고유명사이기 때문에 바꿀 수가 없다고 해서 당시에도 계속 ‘태능’이라는 학교명을 고집해 왔다. 당시 필자는 ‘테릉’으로 바꾸자고 주장했던 사람 중의 하나다. 하지만 동창회에서 반대하여 바꾸지 못한 것으로 안다. 사람들은 변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한 번 바꿀 때 신중하게 해야 한다. 물론 한글이 없었을 때는 어쩔 수 없이 이두식으로 표현했지만 오늘날 같이 한글로 자유롭게 표기할 수 있는 때에 굳이 과거의 이두식 글자를 고집할 필요가 있을까?

 

요즘 마을 이름을 보면 억지로 한자로 바꾼 것 같은 곳이 많다. 충청도에서 필자가 살았던 마을 이름이 ‘초미동’이다. 이 뜻을 알려고 엄청 고생했다. 원래는 ‘재뫼동’이었다. 마을 위에 백제(?)시대에 쌓은 성이 있기 때문에 ‘성이 있는 산’의 뜻으로 순우리말로 ‘재뫼동’이라고 했던 것인데, 후학(?)들이 발음하기 쉬운 ‘초미동(진산면 만악2리)’으로 바꾼 것이다. 그 너머에는 ‘성아랫마을’이 있다. 고려시대 이후 한자의 세력에 밀리고, 일제의 한자화 작업으로 마을 이름이 많이 바뀌었다.

 

월외리(月外里 =달밝골)가 월멸동(月明洞)으로 바뀐 것은 그나마 뜻이 살아 있지만, 재뫼동이 초미동으로 바뀐 것은 근거가 전혀 없다. 차라리 ‘밖거리’를 ‘두마면’이라고 쓰는 편이 나중을 위해서 좋다. 이와 같이 우리말을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한자교육을 병행해야 한다.

 

어려서 자주 갔던 고향 구석구석의 이름이 생각난다. 우미기, 배실, 벌떠구니, 성넙, 절골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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